아무 날의 아무 시

세상에 생일이라는 게 왜 있는 걸까? 네가 행복할 수도 없는데*……

바보들은 아무 기념일이나 만들어서 더 큰 내려앉음을 손에 손 잡고 기원하고 있고 나는 바보 원의 일부였으나 새로 잡고 싶은 손이 생겨 원을 깨고 나왔다 손은 본래 잡는 것이 아니라 으스러뜨리는 것이므로 바보들은 하나같이 즐겁게 강강수울래 천사들은 하나같이 즐겁게 침묵 그리고 침묵

바보들은 축하할 것이 많아서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지경까지 갔다 달력이라는 것을 만들고 어떤 날짜에 자기들을 닮은 원을 그린다 어차피 순환은 멈출 수 없는데도, 이름을 붙이면 뭐든 특별해지는 것처럼 보이니까 바보들은 아무 날에나 축하를 한다 천사들은 아무 날을 아무 날로 보낸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해, 그러니까 뭐든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지는 것처럼 보이지, 그런데 너는 나는 특별함이 싫어, 우리는 본질을 보잖아, 출생을 축하한다는 건, 출생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그건 죽고 싶다는 뜻이잖아 흰 날개를 갖고도 바보들 원의 한가운데로 추락하고 싶다는 뜻이잖아

내가 너를 데리고 원 안으로 도망쳤을 때 사람들은 조금 당황하는가 싶더니 다시 원을 만들었다 - 나는 그 꼴이 지겨워서 그 바보들만 갖고 있는 탄력성과 항상성이 무척이나 역겨워서 날개를 펴기로 결심했고 - 그건 어떤 선언이었다 모든 날을 허무하게 만들겠다는

내 날개는 점점 커져서 태양을 가린다 세상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과 일 년이 사라지고 바보들은 시간을 잃으니 목적성을 잃고 흩어진다 이제 아무 날도 없어 나는 네게 재차 선언하고

언어는 생각을 지배해, 그러니까 뭐든 이름만 뺏으면 특별함을 잃는 거지, 그러니 너와 나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어, 서로의 이름만 있으면 되는 거야, 고유명사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무엇도 축하할 필요가 없어, 그리고 그건 살아야겠다는 선언이 될 거야

세상에 어떤 기념일도 없게 되는 날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그날마저 기념일이 될 테니까 낮과 밤은 여전히 반복되고 순환 그것이 지겨운 줄도 모르고 바보들은 강강수울래 우리들은 침묵 그리고 침묵 하지만 지면 위에서 나는 날개를 펴고 자유로워 무엇이든 누구든 죽여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네가 싫어하는 그날 따위는 없어 그러니 이건

*나의 자랑 이랑, 김승일